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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6.23 나에게.


현민아,

지금까지 사느라 고생했다.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사고로 잃은 것도 아니고,

배고픔에 허덕였던 것도 아니고,

친구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 

너도 고생했잖아.

고시도 실패하고 

사랑도 실패하고 

친구들이 감당못할 정도로 

풀어내지 못하는 응어리를 끌어안고

혼자, 나는 혼자라는 느낌을 이기지못하고 

매일매일 패배하면서 울고 

한심해하고 

세상은 결과만을 보고 

일어나라, 조금 더 걸어라

게으르고 싶어서 핑계대는거다 

몸이 편해서 그렇다.

너는 괜찮다.

그렇게 찔러대고 

하고싶지도 않은 변호사 공부 꾸역꾸역 니 빚내서 해가면서 


매일 의자에 앉아서, 누워서 

일하면서, 걸으면서 

이게 언제 끝나나 

이 삶이 언제 끝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 때려치지 않고

조금씩 더 버텨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심성이 나약한 너치고는 

선방이었어.


이제 너도 더 버티기가 싫지?

어차피 버텨도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혹여나 눈에 보이는게 생기면 그때서야 잘했다 고생했다.

보고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사람들 

꼴 보기도 싫고 

너 자신도 어쩌면 나를 꼴보기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고생했다는 말 밖에 없어 .

이런 너로 자라서 미안하다.


너도 좋은 점이 많은데 

좋은 점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만 너를 갖다 둔거 같아서 미안해.


너는 그냥 삼각김밥과 컵라면에 맥주 한잔 먹으면서 

잔디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

너무 분에 넘치는 곳으로 너를 데려와서 미안해 ..


니가 베란다 창문 열고 항상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면서 짓이겨진 너를 상상했다는 것도 알아.

칼을 손목에 대고, 몇번이고 긋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아.

무심코 네게 상처를 줘버린 세상에게 

네 스스로 상처를 입혀서 '자 보라고, 이제 보이냐고' 복수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아.


내가 겁쟁이라서,

너를 떠밀지 못한것이 .. 잘한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복수하도록, 끝을 내도록 너의 등을 밀어주었다면 좋았을까 ..


왠지 나는 살고싶었나봐.

내일은 조금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나봐.

그리고 아직도 조금은 그래.


나는 너와 반대이니까.

네가 쉬고 싶고 힘들때 

안아주길 바랄때 

나는 그걸 외면했으니까.

잘했다고 생각하고 싶을때 

나는 안좋은 점들을 지적했고 

슬프고 울고싶다고 생각할때 

나는 네 가슴을 치면서 울지 못하게 했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을때 

왜 그러면 안되는지 조목조목 따지고는 했지.

더 참을 필요없다고 생각할때 

나는 더 참아보라고만 했지.

그래서 지금의 네가 되지 않았을까.

미안해..


현민아.

너를 알아주기엔 

사람들은 너무나 아프고 바빠..

내가 너밖에 안보이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밖에는 보이지가 않아.


그러니까 내가 너를 알아줄게.

다 너를 욕해도

나는 너를 안아줄게.

나는 너를 욕하지 않을게.

네 편이 되어줄게 ..

우선은 그것만 믿고 

마지막으로 내 응석을 받아주렴 ..

살아보자.


아직 그래도 나쁜일이 더 일어나진 않았으니까 ..

시험들은 좀 끝내고 ..

빚도 좀 갚고 ..


더 버틸 수 없는 나쁜일이 일어난다면

이 여정을 잠시 마친뒤에도 여전히 아프다면

그 때는 네 말 듣자.


내일도 부디 살아서 이 글을 읽어주렴.

모레도 부디 살아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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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요한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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